FC바르셀로나 우산
태풍 산바의 위력으로 근처 나무도 몇 그루 쓰러졌다. 이런 날 우산을 쓰고 나갔다간 우산을 성하게 되가지고 오기란 힘든 일이다. 볼라벤이 지나가고 새 우산을 샀는데 쓸 일이 없다고 툴툴거렸지만 아직까지는 우산을 아끼는 마음이 커서 들고 나가도 조심조심한다.
전에 나름 큰 마음 먹고 산 빨간 땡땡이 우산을 부숴버리고 우산은 역시 소모품이란 생각에 길에서 가장 싼 비닐 우산을 샀다. 그 비닐 우산은 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우산 살 하나가 휘어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나와 함께할 운명이 아니었던지 분명 두었다고 생각한 곳에는 우산이 남아 있지 않았고 그렇게 별 미련 없이 우산을 떠나보냈다. 우산을 발견한 누군가에게 얼마간 잘 쓰이면 좋을 텐데.
우산을 새로 사아만 하는 상황이 되자 호락호락 아무 우산이나 사기는 싫었다. 내가 원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사야만 해서 사는 것은 유쾌하지 않다. 쏙 마음에 드는 우산을 사려고 여기저기 둘러봤지만 가격 대비 성능이 다이소 우산보다 좋아 보이는 것이 없었고, 비싼 만큼 예쁘지도 않았다. 이렇게 돌아다녀서는 마음에 드는 우산을 찾지 못할 것 같아 인터넷으로 찾아보기로 했다.
깔끔함과 튼튼함 때문에 평소 장우산을 신봉한다. 삼단 우산은 금세 고장이 날 것 같고 우산을 각 잡아 접기도 공이 든다. 이번에도 장우산을 목표로 하고 검색해봤지만 종류가 많으니 거기서 거기인 것 같고 흡족한 우산은 없었다. 적당히 튼튼하고 예쁜 색으로 주문하려고 마음까지 먹었지만 그건 만족할 수 있는 결정이 아니었다. 삼단이나 이단 우산으로 범위를 넓히기로 했다.
검색 끝에 발견한 우산이 이 우산이다. 평소 호감을 가지고 있던 FC바르셀로나에다 흔하지 않은 디자인, 색. 우산의 빈자리를 채우기에 적합하다. 버튼을 누르면 펴지고 접을 수 있는 자동 우산이라는 점도 흥미로웠다. 배송을 받고 보니 생각과 달리 천 자체가 파란색 자주색 줄무늬가 아니라 파란 천에 자주색 줄이 인쇄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점 말고는 모든 부분이 생각 이상으로 좋았다. 부실하지 않은 바느질에 군데군데 박혀있는 FC바르셀로나 문양, 오묘한 색상, 버튼을 누르면 우산이 펴질 때의 경쾌함.
우산을 쓰고 길을 갈 때 우산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다 버튼을 누를 때가 있다. 그러면 졸지에 우산이 접힌 채 비를 맞는다. 우산에 익숙해지면 이런 일은 없을 것 같다.
역시 선택은 원하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