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19일 금요일 해고를 당하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휴대폰을 켜보니 늦은 시간이어도 연락을 달라는 사장님의 문자가 남겨져 있었다. 오래 쓴 내 휴대폰은 만 하루를 버티지 못하고 이렇게 꺼진다. 아무튼 통화를 했다. 그리고 나는 잘렸다. 글쎄, 미리 말을 해주셨다면 나는 다른 일자리를 알아볼 여유로운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제 잘렸다.
뉴질랜드의 임금법을 간략히 설명하자면 최저 시급은 15.25달러이고 내가 실 수령하는 시급은 12.90 달러 정도가 된다. 세금을 제하고 받기 때문이다. 최저 시급에 맞게 임금을 받으면 모든 것이 잘 지켜지는 것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 여기는 일년 만근을 했을 때 4주 간의 유급 휴가가 있고, 일년 만근을 하지 않는 경우는 홀리데이 페이라고 해서 휴가비 개념으로 이 돈을 시급에 포함해서 받거나 퇴직 시 한번에 받게 되어 있다.
사전에 정해진 이주간의 트레이닝 기간이 끝났을 때, 홀리데이 페이와 세금 신고, 고용 계약서에 대해 문의를 드렸다. 사장님은 ‘큰 기업이나 그런 게 있는 것이지 우리 같이 영세한 사업장은 그런 게 없다, 그런 게 있는 줄 알았으면 진작 했을 텐데 올해부터 새롭게 바뀐 것이냐.’ 등의 말씀을 하셨다. 한국에서 이민을 온 후 흐른 시간이 강산이 두 번 바뀔 정도는 되었을 텐데 왜 모르시는지, 복지 혜택의 아래에 놓여 있으면서 왜 최소한의 노동법은 모르려고 하시는지 의문으로 찬 주말을 보냈었다. 한국에서도 일일이 고용주에게 따지지 않은 노동법 규정을 여기에서는 이야기했다. 이 나라는 한국과는 다를 것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대한 기대, 한국에 대한 씁쓸함, 여기까지 와서 법 밖에 놓여 있지 않겠다는 결심이 만들어낸 용기였다. 통화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회사 측 회계사와 규정에 대해 논의해보고 다시 알려주겠다는 문자를 사장님으로부터 받았다.
월요일, 사장님께서 잠깐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법적인 규정에 따라 작성된 고용 계약서를 가져왔다고 하셨다. 법규를 봤더니 트레이닝 기간이라고 해서 시급에 차등을 둘 수 없게 되어 있었다며, 트레이닝 기간 이주 동안 최저 시급에 못 미치게 급여를 준 것도 계산해서 준비했다고 하셨다. (여기는 일반적으로 주급으로 급여를 받는다.) 나는 기본적으로 지켜져야 할 최소한의 것이 이제 지켜진다는 것이 몹시 기뻤다. 나의 고용주가 대화가 가능한 사람이라는 것도 기뻤다. 이런 이야기를 꺼낸 것에 대해 사장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실지, 이 일에 대해 이야기 한 적은 없지만 눈치를 챘을 직장 동료들은 나를 어떻게 볼지 염려는 되었다. 마음 속으로 불편했던 일이 이제는 겉으로 드러나 약간은 까끌까끌하게 되었다.
일을 시작한지 한 달, 실질적으로 일을 한지는 삼 주쯤 되는 오늘 나는 이 일이 나와 잘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이유로 사장님로부터 전화로 해고 통보를 받았다. 트레이닝 기간 첫 주가 끝나고 ‘이 일이 저와 잘 안 맞는 것 같아요’라며 고민을 이야기했을 때 사장님은 “안 돼, 못 그만 둬.”라고 하셨는데. 좀 빨리 일을 할 수 있는 직원을 원한다고 했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끊임 없이 멀티 테스킹 능력이 요구 되는 이곳에서 사 주 차에 접어든 나는 이제껏 일을 배운 사람들에 비해 더딘 업무 수행 능력을 보여주었는지도 모르겠다.
갑작스러운 해고였기에 새로운 일을 구할 때까지 여유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더니 얼마 간의 시간을 원하냐고 했다. 이주 정도라고 이야기를 했더니 그건 길다고 했다. 그럼 일주일 정도는 어떠시냐고 했더니 다음주 수요일까지는 일을 할 수 있게 시간을 주겠다고 하셨다. 원래는 당장 내일까지만 일을 했으면 하는 심산이셨다. 그만둘 때는 두 달 전, 최소한 한 달 전에는 말해달라고 하셨는데 이렇게 그만두게 되는 것은 하루면 될 뻔한 간단한 일이다.
내가 이렇게 길게 글을 쓴 것은 혹시라도, 내가 일이 느린 것이 해고 사유 중 하나가 될 수 있겠지만 결정적인 사유는 아닐 수도 있을 거라는 해소되지 않는 일말의 의심 때문이다. 나를 계기로 다른 동료들이 계약서를 작성하고 근로기준법 아래에서 일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나눠보지 않았다. 내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많은 에너지를 쏟았고, 일단 내 문제는 해결 되었고, 내가 한 말이 전체를 헤집어놓게 되는 결과는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계약서 없이, 홀리데이 페이 없이, 세금 신고도 없이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데 굳이 느린 나와 같이 일할 필요가 없는 건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냥 말한 그대로가 해고를 당한 단 하나의 이유이기를. 나는 지켜져야 할 것이 지켜지게 하는 게 쉽지 않았는데 그들은 손쉽다. 찜찜함이 없는 깔끔한 작별이 될 수 있을까.
+ 11월 말인 지금에서 덧붙이는 생각
그 직장에서 일하는 모두가 계약서를 작성하고 노동법에 따라 임금을 받게 되었다고 들었다. 다른 시각에서 보면 사장님은 법 없이도 잘 살아오셨던 분인지도 모르겠다. 법적인 홀리데이 페이라는 이름으로는 아니지만, 그동안 피고용인이 일을 그만둘 때 퇴직금으로 추가적인 수당을 지급해오셨던 분이다. 오히려 법적인 임금보다 피고용인을 더 잘 대우해온 분이실 수도 있다.
하지만, 노동법에 대해 아는 것이 고용주의 의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법은 '을'이 보호받을 수수 있는 최소한의 테두리다. 지금은, 기본적인 것을 찾으려다가는 일을 시작도 못 할 것 같아서, 덜 빡빡(?)하게 살아가기로 했다. 대나무처럼 살다가는 쪼개질지도 모르니, 갈대 같이 살아보기로 했다. 거창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삶에서 투쟁을 빼놓을 순 없는 건가.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랜만에 쓰는 글 (0) | 2019.08.03 |
---|---|
11월 11일 / 지역 이동 비행기표를 사다 (0) | 2016.11.28 |
7월 7일~8월 6일 / 집 구하고 일 구하고 등등 (0) | 2016.11.24 |
7월 2일~6일 / 환전, 통장 개설, IRD 발급 (0) | 2016.11.24 |
6월 30일~7월 1일 / 환전, 인쇄, 짐 챙기기 (0) | 2016.11.24 |